나는 18년차 외국계 기업 재직자 이다.  어느덧 40대 중반이 되어 버렸다. 내가 몇 살인지도 모르고 잊고 살곤 하였다.

아직 마음은 20/30대와 다를바가 없는대,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지 모르듯 몸은 그새 훅 늙어 버렸다.

우아!!!!! 어쩌다가 이리 시간이 갔을까????

엄청 좋은 직장이라고 말하기는 그렇지만, 그래도 어지간한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에서 제공하는 처우와 복지조건 등을 비교해보면 이만한 직장도 없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대로 정년까지 다닐 수만 있다면 그렇다고 할 것 이다.

하지만, 요즘 회사가 매우 어렵다. 모든 것은 숫자가 말해주므로 내가 사장이라도 계속 사업하면 나아질까 확신 없는 고민이 되는 수준이다.
업계의 불황도 문제지만, 회사도 손실과 투자를 구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지금 , 같은 사업을 계속하는 것을 원하는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덕분에 하나의 팀을 맡고 있는 팀장으로서 요즘 직장으로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한때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사람으로서, 이제는 무력감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것 같아 마음이 깊은 늪에 빠진 듯하다. 주위에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고 있지만, 주변 사람들이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을 할 수 가 없고, 못하면 못한다고 말을 할 수가 없는 사면초가의 신세….. 이것을 왜 이제서야 느끼게 되었을까?

직장이 문제라고 생각이 든 나머지, 그동안 안써보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도 다듬어 여기저기 넣어 보기 시작했다. 아직은 간절함이 하늘에 닿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지만, 작은 회사던 큰회사던 어째 반응들이 없다. 애초에 그렇게 쉽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것이 현실이라고 느낀 당장은 모든 것이 갑갑하고 답답한 노릇이었다.

얼마전 거래처 한분으로 부터 XX회사 팀장 XX로 살지 말고, 그냥 너 이름걸고 살아 보시게라는 말을 들었다.

이 말은 나에게 비수였다.  그런 후 엄청난 공포감이 몰려오고 말았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어린 자식들이 있고 하지만, 내가 나의 이름을 걸 고 있는 할 수 있는 것들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일정기간 동안 소득절벽에 빠져도 살수 있는 충분한 돈을 모아 놓은 것도 아니고 여전히 대출이자나 갚고 사는 처지니깐 말이다 !

이 공포감은 내가 살면서 거의 받아 본 적이 없는 수준이다.

어제는 다른 곳으로 이직에 성공하여 자리를 잘 잡은 후배를 만났다.

당당해진 모습이 솔직히 부러워 보였다. 잘 지내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할 것 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오지만, 그것이 순수한 의도에서의 질문은 아님을 직감하였다. 나의 처지를 보면서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하고 싶어 하는 눈치 였다.

나는 더욱 성장하고 싶은데, 당신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앞으로의 방향을 가늠해 보겠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이 친구 덕분에, 나는 내 나이에 후배를 만나는 것이 선배를 만나는 것 보다 훨씬 부담스럽고 어려운 일 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성장이 멈춘 인생은 질주해 오는 신예 후배들에게는 좋은 안주 거리가 된 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진작에 했어야할 고민을 너무 늦게 하게 된 것 같다.

직장에서 후배들에게 업무지도 또는 인생조언을 하면서 내가 내뱉었던 많은 말들은 그저 내가 지나온 길을 그대로 설명해 줬을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누가 누굴 조언하나, 나나 잘하면서 지적질을 해야지!

나에 대한 시간을 당분간 가져볼 생각이다. 나는 무엇을 좋아했으며,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 차분 차분히 앞으로의 길을 모색해보기로 하였다.

무언가 준비하기에는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어쩌겠는가 아무것도 안하고 있을 수는 없는 법….